지난 글에서는 세트(SET) 게임의 규칙과 진행 방법을 살펴봤습니다.
81장의 카드, 4가지 속성, 그리고 “모두 같거나 모두 다르면 세트”라는 간단한 규칙까지 익히셨다면, 이제 진짜 재미있는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슬쩍 언급했던 “12장 중에 세트가 없을 확률이 3.2~3.4%”라는 수치, 어디서 나온 걸까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오늘은 세트 게임 속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수학적 원리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교사로서, 그리고 아이와 함께 이 게임을 즐기는 부모로서 알아두면 아이에게 설명해줄 때도, 게임을 더 잘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목차
두 장만 고르면 세 번째 카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세트 게임에서 가장 신기한 성질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카드 두 장을 아무렇게나 고르면, 그 둘과 세트를 이루는 세 번째 카드는 81장 중 정확히 한 장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트의 규칙을 다시 떠올려볼게요. 4가지 속성 각각에서 “모두 같거나 모두 다르다”를 만족해야 하죠.
- 두 카드가 어떤 속성에서 이미 같은 값이라면 → 세 번째 카드도 반드시 그 값과 같아야 합니다. (다르면 “모두 같음”이 깨지니까요)
- 두 카드가 어떤 속성에서 서로 다른 값이라면 → 남은 값은 3가지 중 1가지뿐이므로, 세 번째 카드는 그 남은 값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 카드 A: 타원 1개, 파랑, 채워짐
- 카드 B: 타원 2개, 초록, 채워짐
이 두 장을 속성별로 뜯어보면:
- 모양: 둘 다 타원 (같음) → 세 번째도 타원
- 개수: 1개, 2개 (다름) → 남은 개수는 3개뿐 → 세 번째는 3개
- 색상: 파랑, 초록 (다름) → 남은 색은 빨강뿐 → 세 번째는 빨강
- 음영: 둘 다 채워짐 (같음) → 세 번째도 채워짐

따라서 세 번째 카드는 반드시 “타원 3개, 빨강 채워짐“이어야 합니다. 다른 카드는 절대 될 수 없어요.
4가지 속성이 모두 하나씩 자동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는 거죠.
💡 아이와 해보세요: 카드 두 장을 뽑아놓고 “세 번째 카드는 어떤 모양, 어떤 색깔일까?” 먼저 맞혀본 다음, 덱을 뒤져서 실제로 찾아보는 놀이를 해보세요. 저희 아이도 이 원리를 알고 나서부터는 카드를 맞힐 때마다 꽤 뿌듯해하더라고요.
81장 속에는 세트가 몇 개나 숨어 있을까?
이 유일성 원리를 이용하면 재미있는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81장의 카드 안에 세트가 될 수 있는 조합이 총 몇 개인지 세어볼 수 있거든요.
- 81장 중 아무 두 장을 고르는 경우의 수: 81 × 80 ÷ 2 = 3,240가지
- 그런데 앞서 확인했듯, 세트 하나(카드 3장)를 이루는 조합에서는 어느 두 장을 짚어도 나머지 한 장이 자동으로 정해집니다. 즉 세트 하나마다 “두 장 고르기”가 3번씩(3장 중 2장을 고르는 경우의 수만큼) 중복해서 세어지는 셈이죠.
- 그러므로 3,240 ÷ 3 = 1,080개
81장의 카드 속에 무려 1,080개의 서로 다른 세트가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81장 전체를 컴퓨터로 하나하나 대조해봐도 정확히 1,080개가 나옵니다.)
카드 12장만 펼쳐놓아도 세트가 꽤 잘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숫자 덕분이겠죠.
세트가 없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난 글에서 “12장을 펼쳤을 때 세트가 하나도 없을 확률이 약 3.2~3.4%”라고 말씀드렸었죠. 1,080개나 숨어있는데 왜 가끔은 하나도 안 보이는 걸까요?
전체 81장의 카드 중 12장을 무작위로 뽑는 모든 경우의 수는 =70,724,320,184,700 (약 70조 7천억 개)입니다. 이 가운데 세트를 만족하지 않는 경우의 수를 구하면 세트가 나오지 않을 확률을 구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요)
이 확률은 크게 ① 게임 시작 직후(또는 완전히 무작위로 뽑았을 때)와 ② 실제 게임을 진행 중일 때로 나뉩니다. 게임 중에는 이미 세트를 맞추고 카드가 빠져나간 상태라 남은 카드들의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1) 12장일 때 세트가 없을 확률
무작위 12장을 뽑았을 때: 확률은 약 3.2% ~ 3.4%입니다 (확률상 약 30:1 ~ 33:1의 확률). 100번 바닥을 깔면 3번 정도는 세트가 없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게임 진행 중일 때: 세트가 빠진 뒤 새 카드가 채워지므로 확률이 상승하여 약 6.5% ~ 7.4% (약 13:1 ~ 15:1의 확률)까지 올라갑니다. 그래서 게임을 하다 보면 설명서에 적힌 것(33:1)보다 세트가 안 보이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고 합니다.
2) 15장일 때 세트가 없을 확률
12장에 세트가 없어 3장을 더 깔아 15장이 되었는데도 세트가 없을 확률입니다.
무작위 15장을 뽑았을 때: 확률은 약 0.04%로 극히 낮아집니다 (약 2500:1 ~ 2700:1의 확률). 공식 설명서에 나오는 수치입니다.
실제 게임 진행 중일 때: 12장에 세트가 없는 조건이 이미 발동된 상태에서 3장을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게임 중 15장 상태에서 세트가 없을 확률은 약 1.1% (약 88:1 ~ 90:1의 확률)로 무작위일 때보다 훨씬 높게 나타납니다.
세트가 단 하나도 없는 카드 뭉치, 최대 몇 장까지 가능할까?
여기서부터는 조금 다른 질문입니다.
지금까지는 “무작위로 뽑았을 때” 이야기였다면, 이번엔 “머리를 써서 일부러 세트가 안 나오게 카드를 고른다면, 최대 몇 장까지 모을 수 있을까요?”
답은 20장입니다. 21장을 모으는 순간부터는 아무리 요리조리 골라도 그 안에 세트가 반드시 하나는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답이 알려진 시점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 20장이라는 숫자는 이탈리아 수학자 주세페 펠레그리노(Giuseppe Pellegrino)가 순수 기하학 연구를 통해 1971년에 이미 증명해둔 결과입니다. 마샤 팔코가 세트 게임을 만든 게 1974년이니, 수학자들은 이 카드게임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죠! 물론 펠레그리노는 카드게임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하학적 구조를 연구하고 있었을 뿐이고, 훗날 이 결과가 인기 보드게임의 답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겁니다.
그런데 수학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속성이 4가지가 아니라 5가지, 6가지, 훨씬 더 많아지면 이 최대 크기는 어떻게 커질까?”라는 훨씬 더 어려운 질문으로 넘어갔거든요. 이 일반화된 질문은 ‘캡셋 문제(cap set problem)‘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수십 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혀 온 유명한 난제였습니다.
그러다 2016년, 크로트(Croot)·레브(Lev)·파치(Pach) 세 수학자가 ‘다항식 방법’이라는 놀랍도록 간결한 방법으로 이 문제에 돌파구를 열었고, 곧이어 조던 엘렌버그(Jordan Ellenberg)와 디온 헤이스베이크트(Dion Gijswijt)가 이를 발전시켜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 세계 수학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성과는 순수 수학을 넘어 컴퓨터의 행렬 곱셈 속도를 높이는 알고리즘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아이들과 즐기는 카드게임 하나가 이렇게까지 깊은 수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왜 하필 3가지 종류 4가지 속성일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갈게요. 세트 카드는 왜 색깔도, 모양도, 음영도, 개수도 전부 딱 3가지씩일까요?
만약 색깔이 2가지(예: 빨강, 파랑)뿐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카드 3장의 색깔이 “모두 다르다”는 조건 자체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색이 2가지뿐인데 3장이 전부 다른 색일 수는 없으니까요.
반대로 색깔이 4가지였다면, 두 카드의 색이 서로 다를 때 남은 색 후보가 2개나 됩니다. 그럼 세 번째 카드가 여러 개 가능해지면서, 앞서 확인했던 “세 번째 카드는 딱 하나로 정해진다”는 법칙이 깨집니다.
또 4가지 종류로 바꾼다면 카드의 수는 장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4가지 속성값, 4장 완성 버전으로 바꾸게 되면 인간의 뇌가 한 번에 직관적으로 처리하기 매우 어려운 초고난도 수학퍼즐이 되어버립니다.
딱 3가지일 때만 “모두 같거나, 완전히 다르거나” 둘 중 하나로 깔끔하게 떨어지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으로 변하게 됩니다.. 세트 게임의 우아함은 사실 이 숫자 ‘3’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에요.
글을 마무리하며
카드 몇 장 늘어놓고 패턴을 찾는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렇게 촘촘한 수학이 짜여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에게 규칙만 설명해줄 때는 몰랐던 원리들을, 직접 계산하고 찾아보면서 알게 되니 게임이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세트를 하실 때 “두 장을 고르면 세 번째 카드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원리 정도만 살짝 알려줘도, 아이가 게임에 훨씬 더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알고 나면 카드 한 장 한 장이 다르게 보이는 게임. 그게 바로 세트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멘사셀렉트 보드게임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